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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현인들공자님 생평공자의 주유열국

공자의 주유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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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천하

주유천하기원전 497년 봄, 노나라를 떠난 공자는 그를 따르고 같이 하고저하는 제자들과 함께 14년간의 여정을 펼치게 된다.
공자가 가장 먼저 간곳은 서쪽에 있는 위나라이며, 중간에 머무르고 간 국가들을 보면, 위국‧진위‧조국‧송국‧진국‧초국으로, 기원전 488년이 되자, 그는 다시 위나라로 돌아오게 된다.

공자가 위나라로 돌아오자, 그의 제자들도 함께 노나라와 위나라 근처로 돌아와, 나라의 관직에 종사하면서, 모두들 맡은 바 역활을 훌륭하게 해내었다. 그리하여, 기원전 484년에, 노나라의 집정대신이 사신을 파견하여, 위나라에서 공자를 모셔오게 하여, 68세가 된 공자가 비로소 노나라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공자는 긴 세월동안 여러나라를 다니며 이런저런 수모를 겪게 되고, 몇번씩이나 위험한 고비와 가난과 배고품에 시달리는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한때는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머무를 때, 허허벌판에서 7일동안 먹을게 없어, 제자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몸도 허약해져 병에 앓기도 하여, 그 생활을 더이상 할수 없을 정도로 곤경에 빠지게 된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제자중에 중유(仲由)라는 사람이 기근에 시달리는 동료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화가 나 공자께 여쭈었다. “아니, 군자로 행신하고 살아도, 이렇게 소인들처럼 곤란한 환경에 빠지는 겁니까?”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군자와 소인의 차별이란, 군자는 어려움을 겪어도, 그의 지조를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어려움을 겪으면, 자신의 도리를 벗어나, 행해서는 않되는 일도 감히 행하고 만다.” 공자께서는 당시 죽음에 직면 하실 정도의 어려움을 겪었으나, 끝까지 마음의 열정을 잃지 않았으며 오히려 시종일관 신념을 굳게 세워, 대도를 세상에 펼치고저 하는 마음을 항상 품고 있었다.

공자의 신념을 알아주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제자들을 가르키는 일을 언제나 포기하지 않았던 공자는 그의 수양과 덕행을 흠모하는 사람들과도 여러번 만났다. 그중에 한사람이 위나라의 의봉인으로, 그는 일부러 공자에게 찾아와 그를 만나려 했으며 이웃사람들에게도 이렇게 말하였다. “이 분은 하늘이 보내주신 사람이오. 지금 이천하에 절실하게 필요한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이 분이 모두에게 보여주고 있소!” 하였다. 그러나 그를 이해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은둔하여 세상과 멀리하고 있는 몇몇 은둔자들이 공자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던 것을 볼 수 있다. 한 은둔자는 중유(仲由)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온 세상이 한결같이 어지러운데, 누가 이를 고칠수 있겠는가? 자네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따르느니, 세상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나를 따르는 것이 더욱 옳지 않겠는가?” 했다. 이말을 들은 공자는 매우 안타까워하며: "나는 새들이나 짐승과만 어울려서 살지는 못한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누구와 같이 하겠는가? 세상에 도가 있다면, 나인들 모두와 함께 어울려 살지 않았겠는가?” 하였다.

이와 같은 말속에서, 공자가 주유천하를 해야만 하는 마음을 알 수 있으며, 비록 공자의 학식으로는 관직을 얻는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그가 진정 갈망하고 있는 것은 살기 좋은 세상으로 돌아오는 것이었기 때문에 주유천하를 마다않고 이리저리 떠돌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도 사람들 비위에 맞추어 행동하고 권력자들을 따르면 충분하게 영화부귀를 누릴 수 있었으나, 올바른 도를 행하려 그 당시의 흐름에 대항하고 역행적으로 자신의 뜻을 펼치려 하였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러나 공자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 비록 그의 뜻을 순수히 받아들여, 나라를 개혁하려는 국왕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가 추구하는 정신과 사상은 그의 주유행적을 따라 노나라 뿐 아니라 그 밖의 넓은 세상에도 펼쳐지게 되었던 것이다.

Review by 梁台根教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