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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현인들공자님 생평바람직한 청소년

바람직한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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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뜻을 둔 청년

배움에 뜻을 둔 청년공자 이름은 ‘구’라하며, 자는 ‘중니’ 라한다. 공자의 아버지 공흘과 어머니 안씨가 니구산이라는 곳에서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해서 아들을 얻자 니구산의 이름으로 아이의 이름과 자(字)를 지었다.

공자는 노양공22년 (즉 기원전551년)에 태어났으나, 안타깝게도 3년후, 부친이 돌아가셨다. 어머니 또한 공자가 17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부친이 돌아가실때, 공자는 너무 어렸고, 그 당시 예법에는 집에서 제사만 지냈지묘소를 찾지 않았기 때문에, 공자는 아버지의 묘소를 찾기 위해 방방곡곡을 찾아 다닌 후에서야, 마침내 부모님을 함께 합장할 수 있었다. 자식이 부모님을 모시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부모님이 곁에 있지 않다는 옛말이 있듯이 공자께서는 부모님 상례를 단축하자는 제자 재여에 대하여 “너인들 부모품에 안겨 3년은 크지 않았겠는가”라고 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공자 가슴속 가득히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공자 가문은 대를 이어 벼슬아치에게 주는 녹봉이 없었으므로, 자기힘으로 관직에 나가거나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공자의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생활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공자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던 말씀으로: “내가 어렸을 때는 생활하기 힘들어 여러가지 기술을 배웠야 했었다.” 하였듯이, 지금 알아낸 바로도, 공자께서는 창고관리직도 하셨고, 소와 양을 지키는 목동일도 하셨는데, 이런 실무적인 일들을 통해서 공자께서는 독립된 성격 그리고 드넓은 시야를 확고하는데 좋은 경험이 되었다.

공자의 배움에는 일에서 뿐만 아니었다. 집안환경에 영향을 받아, 어릴때부터 각종 제사 혹은 의례용기 등을 갖고 장난감으로 삼으며 어른흉내를 내고는 했다. 어린공자의 이러한 취미는 어른이 되면서도 감소되지 않고 예악에 대한 열정이 깊어만 갔다. 공자께서 27세 되던해,담(郯)나라의 국왕이 노국을 찾을 때, 공자께서 담나라 국왕을 만나 고대 관청과 학제에 대하여 가름침을 받았다. 청년이되서는 노자를 찾아 “예”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았고, 또한, 악사인 양자로부터 북과 금타는 법을 배웠다. 30여세가 되자, 예에 대하여 잘안다고 소문이 났지만, 제나라의 유명악사에게 소악을 배우기 시작하여, 그 즐거움을 “삼개월간 고기맛을 모르고 지냈다” 로 표현하며 “이렇게 큰 즐거움이 있을 줄이야”하고 말씀하셨다; 연릉의 계자가 장례치룬다는 소리를 듣자, 공자께서 “연능의 계선생은 오국에서 예를 알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 하여, 그곳을 찾아 예를 지켜보았다. 이런 이야기등을 통해 공자가 지식에 대한 열정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공자는 가능한한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하였고 일단 배운 것은 철저하게 익혔다. 공자께서 양자로부터 금을 배울때, 10일간을 배우고 나서 양자께서: “자, 다음곡을 배웁시다.” 하자, 공자께서는 : “곡조는 배웠지만, 리듬에 대해서 잘 파악이 않됩니다”하였다;그리고는 10일을 더 배우고 양자께서:“자, 다음곡을 배웁시다.”하자, 공자께서는 : “이곡 속에 있는 정신에 대해서 잘 파악을 못하고 있읍니다” 하였다;다시 10일이 지나자, 공자께서는 : “이곡의 작가가 품고 있는 뜻을 잘 이해 못하고 있읍니다” 그리고는 또 몇일이 지나자, 그때야 뭔가를 께달은 듯이 양자에게 말했다:「작가의 사람됨됨이를 알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뜻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문왕외에는 없는 걸로 알고 있읍니다!」하자, 양자께서 놀란듯이:「맞습니다. 지금 가르치고 있는 곡이 바로〈문황조 文王操〉라는 곡입니다!」한 일화가 있다. 《논어》에서도 공자께서 젊은 시절에, “태묘에 들어서자, 모든것들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자 했다”라는 글이 있듯이, 제례의식을 지내는 사람들을 도와가며 이런 저런 절차에 대해 물어 보고 확인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런 공자님을 보고 사람들은 ‘예를 잘 알다는 사람이 저렇게 묻다니 , 아무것도 모르는 것 아닌가? 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자께서는 의식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절차를 확실히 하고 매사에 신중함을 보인 것으로 비록 좋지 않은 평가를 들어도 개의치 않았다.

당시 춘추시대의 일반 지식인의 경우를 보면 공자처럼 배운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일반 지식인들이 배우려 하는 것은 직업에 필요한 사무들이었다. 악을 배우면, 어떻게 연주할 가를 배우고, 예를 배우면, 자주하는 제사를 어떻게 진행할 가에 그쳤다; 그러나 공자께서는 더넓고 깊게 학습을 하고자 했다. 그것은 그가 소년시절부터 자기의 뜻을 세웠기 때문이라고도 할수있다. 가난한 관계로 이곳저곳에서 일자리를 구해야 했지만, 일자리를 얻기 위해 예악을 배운것이 아니고 예약과 학문의 진정한 의미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15세에 자신의 뜻을 세운 소년은 배움에 대한 열성을 가지고 평생 후회하지 않는 구도의 길을 걷게 되었다.

Review by 梁台根教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