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국14년(1925年) 천페이껀(陳培根), 꾸시엔롱(辜顯榮)씨 등은 타이페이 공자묘의 건축을 제의하여 따롱통(大龍峒)에 타이페이 공자묘의 중건을 준비하였다. 그 규모와 배치는 전통 공자묘 형식에 의거해 기획되어 매우 웅장한 규모였는데, 그 규모를 살펴 보면 중앙에 위치한 주요 건물은 남에서부터 만인궁장(萬仞宮牆), 반지(泮池), 영성문(櫺星門), 의문(儀門), 대성전(大成殿)과 숭성사(崇聖祠) 순서로 위치하고, 동쪽에 동무(東廡), 서쪽에는 서무(西廡), 좌측 공터의 앞쪽은 명륜당(明倫堂), 뒷쪽은 주자사(朱子祠), 윗층에는 주자와 문창제군(文昌帝君)을 봉사하며, 아랫층에는 도서관을 지을 것을 구상하였다. 우측의 공터는 무성(武聖)의 제사를 지내는 무묘(武廟)를 만들고, 뒷편에는 높이 솟은 규로(奎樓)를 만들어, 괴성(魁星, 북두칠성의 첫째별)을 봉사하기로 계획하였다. 문무묘가 함께 있으며, 주자사와 도교 색채의 규로를 함께 짓는 이 공자묘 형식은 원래 전례가 있었다.
하지만 타이페이 공자묘는 창건 초기에 경비가 부족하여 좌우 양측의 네 채의 건축물은 짓지 못하고, 명 건축가 왕이슌(王益順)의 손에서 탄생한 웅장했던 규모의 원 설계도도, 만인궁장 밖에는 청운 담벽(青雲牆)과 하마비(下馬碑)도 세워져 있지만, 결국 아직도 모두 실현되지 못했다.
원래 명륜당과 주자사를 지으려 했던 곳은 공자묘의 동쪽 정원의 공터였지만, 타이완 광복 이후 서쪽 공원의 공터에 현대식 시멘트 건물인 명륜당을 지었다. 여기서는 현재 주로 모임이나 강좌, 독경 및 서예 등의 강습 프로그램과 많은 문화 행사를 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