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로, 춘추시대의 노나라(지금의 샨둥성 취푸현) 사람이다. 주 영왕(靈王) 21년 8월27일(기원전 551년 9월28일)에 출생하여, 주 경왕(敬王) 41년(기원전 479년)에 생을 마감했다.공자는 노나라의 서울 시장을 지냈으며, 후에는 사법장(司法長)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56세에는 3개월동안 대리수상(代理首相)직을 하면서 많은 업적을 일궈냈고, 그 후 13년간 제후국을 주유하였다. 68세때 노나라로 돌아와, 시경(詩經)과 상서(尚書)를 정리하고, 예악을 제정하였으며, 주역에 주석을 달고 춘추도 편찬하는 등, 중국 문화를 위한 기초를 다졌다.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공자의 제자는 3천여 명에 달했고, 그 중 ‘육예(六藝)에 능통한 72명의 제자가 있었다.
공자는 2000년 중국 역사 상 가장 위대한 교육가, 정치가, 사상가이다. 그의 철학 사상의 중심은 바로 ‘인(仁)’이다. 정치적으로, 공자는 ‘덕치(德治)’를 주장했지만, 그의 최대 업적은 바로 교육에 있다. “유교무류(有教無類)”를 주장하여, 연령, 본적, 계급, 인품을 논하지 않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어떤 제자든지 그는 거절하지 않았으며, 시(詩), 서(書), 예(禮), 악(樂), 사(射), 어(御), 문(文), 행(行) 충(忠), 신(信)으로 제자를 가르치고, 문무합일(文武合一), 술덕겸수(術德兼修)의 교육방침을 실시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제자들은 더욱더 열심히 공자의 위대한 학술체계의 발양과 보급에 힘을 썼다. 후에 공자의 사상을 ‘유가’라 부르며, 한무제 이후 중국의 모든 역대 왕조는 유가 사상을 치국(治國)의 근본 이념으로 삼고, 아울러 공자를 ‘지성선사’ 또는 ‘만세사표(萬世師表)’라 칭송하였다. |